[글마당] 정월 초하루
통영갓 쓰고 두루마기 입은 어르신들 계시던 자리에 양복과 말쑥한 차림새에 새 양말 신고 서 있는 제관들 놋주발에 담긴 메밥들 올라가자 참새들은 뒤안 대나무숲에서 조잘대고, 아침 햇살 비치는 문살 너머 하얀 눈 반짝인다 병풍 앞에 진설된 제물들 흠향(歆饗)하시며 ‘고생 많았제? 다 잊어뿌라…… 조심해서 가거래이!’ 소리 없는 소리들 향불 연기를 흔든다 주손(主孫) 없는 종가. 광(光)이 나는 구두 뒤축 닳은 구두 운동화들이 객지에서 돌아와 길게 정렬해 있는 사랑 마루 밑 집 주위 은행나무 감나무들도 가만히 서 있다. 권정순 시인글마당 초하루 정월 정월 초하루 구두 운동화들 제물들 흠향